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랑고바르드 왕국 (문단 편집) == 정치와 행정 구조 == 랑고바르드 왕국은 기본적으로 혈통에 의해 절대적으로 세습되는 것이 아닌, 왕국을 지배하는 여러 공작들에 의해 선출되는 체제였으며, 이는 명백하게도 랑고바르드족의 이탈리아 정착 이전 부족적 전통에 기반한다. 유럽의 '공작'이라는 직위는 보통 로마 제국의 둑스에게서 유래한 것이지만, 랑고바르드 족은 이름이 로마식인 둑스로 바뀌었을 뿐 둑스와 유사한 역할을 수행하는 직위가 이미 부족 시절부터 있었다. 랑고바르드 족은 일정 수 이상의 전사들이 모인 군사적 집단인 fare로 구성되었으며, 공작은 이 fare의 지도자였으며, 랑고바르드 족의 공작은 이 fare의 군사적, 정치적, 사회적 기능을 직접적으로 계승한 여러 공국들을 통치했다. 처음으로 이탈리아를 정복한 알보인 왕은 정복한 영토를 대도시들을 중심으로 여러개로 분할해 공작들에게 수여하였으며, 이윽고 이 공작들의 작위는 점차 그들이 소유한 봉토와 밀접되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그들은 또한 Gairethinx라고 불리는 왕국 의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는데, 이 회의에서 왕을 선출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랑고바르드 왕국의 왕권은 프랑크 왕국 같이 오직 세습으로만 왕위가 이어지던 나라에 비해 불안정했다. 이는 서고트 왕국이나 동고트 왕국과도 유사하다. 공작은 기본적으로 자신이 지배하는 전사 집단 및 부속 인민들의 우두머리였지만, 동시에 부족적 전통 및 로마적 전통을 계승해 각 지방의 군사 사령관이기도 했다. 이러한 군사적 기능은 랑고바르드 왕국이 로마 문화를 점점 더 깊게 받아들일수록 심화되었고, 나중에는 군사 사령관->자신이 지배하는 영지와 인민 보호->인민들을 보호하고 만족시키는 지역 지도자로 그 위상이 변화한다. 공작은 기본적으로 왕이 임명하는 지도자였기에 철저히 왕권에 이론적으로는 종속되어야 했지만, 동시에 fare로 대표되는 랑고바르드 족의 사회 체제의 대표자로서 지역적 전통에도 종속되었다. 이러한 공작의 위상에 대한 두 가지 기능은, 왕국 내내 반복될 왕권을 강화하려는 중앙vs이에 저항하려는 공작들의 구도로 나타나, 최종적으로는 왕위 쟁탈전이라는 형태로 부딫히게 된다. 이는 6세기 후반의 소위 대공위시대에 절정에 달해, 이 시기에는 중앙의 위상이 바닥을 찍은 한편 지방의 자율성과 그 지방을 지배하는 공작들의 위세는 반대로 하늘을 찌르게 된다. 이러한 왕국을 구성하는 공국들 중에는 베네벤토 공국이나 스폴레토 공국처럼 교황령에 의해 분단되어 실질적으로 반독립 상태를 유지한 공국들도 있었는데, 이 공국들은 중앙의 의시와는 상관 없이 fare 집단 및 공작들이 자체적으로 정착해 세운 것들로서 왕국이 멸망한 이후에도 11세기 노르만 족의 침공때까지 한참동안 유지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